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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국민학교때는 공부를 잘하던 나는 중학교가 되니 공부가 어려웠다. 열심히 하기가 싫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제대로 들은적도 없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생계로 바쁘신 부모님은 내 공부에 하나하나 신경을 써주실 여유가 없었고, 나는 사춘기시절을 친구들과 편지를. 라디오에 사연을. 만화책으로 로멘스를 배우며 자라고 있었다.
당시에는 시험을 치면 성적표에 등수까지 정확히 찍혀 나왔고 부모님의 도장을 받아가야했다. 내 첫 시험은 27등이었다. 당시 우리반 학생이 52명-53명 사이었으니 딱 절반이었다.
국민학교때 잘한다 소리듣고, 상도 받고, 칭찬만 받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숫자였지만, 그 숫자가 충격적이지 사실은 예정된 결과였다. 공부란걸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학교 수업시간에도 공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당장 나는 내 성적에 대한 반성. 내 미래에 대한 걱정따위보다 엄마아빠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도장을 받아가야할지가 가장 큰 난제였다.
편지를 썼다. 장문의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며 꼭 다음에는 열심히 하겠다는 구구절절한 편지와 성적표를 잠들기 전 엄마방에 두었다. 늦게 들어오신 부모님들은 자는 내 모습만 보았을 것이고 내편지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나 성적표에는 부모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성적에 대해 어떤 잔소리나 혼냄도 없으셨다. 그래서 14살 철없던 어린 나는 반성은 커녕 무사히 넘어갔음에 안도하고 여전히 공부는 미룬채 노닥거리며 편지질. 만화책질로 놀았다.
다음 시험이 또 왔고 당연히 시험결과는 똑같이 엉망이었다.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이번에는 편지도 안 통할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모님은 늘 내가 잠들고 난 뒤인 밤늦게 오셨고 다음 날 일찍 나가셨기에 성적표를 직접 대면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해보아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나는 순진하고도 멍청하게 예전에 먹혔던 방법을 한번 더 시도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편지와 성적표.
-한번만 더 믿어주세요. 이번엔 진짜로 열심히 할게요. 제발 믿어주세요
다음날도 도장이 찍힌 성적표가 내 책상위에 올라와 있었다.
당시 부모님 마음이 어땠는지 후에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므로 정확히 모르겠지만, 절망적이셨을지도라고 짐작만 해본다. 이렇게 밤낮으로 일하는데 아이의 공부가 저모양이니 기운이 빠지셨을까, 아니면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서글프셨을까. 지금 부모가 된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 내 부모의 자리에 서보니, 두가지 마음이 다 들었을것 같다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나는 후에도 계속 공부를 못했다. 아니 안했다. 당시에 학원은 부자집 아이들이 가는곳이니 나는 상상도 할수없었고 여전히 나를 강제로 공부시켜줄 사람은 부재였으며 나의 의지도 친구들과의 편지, 만화, 하이틴 로멘스따위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2부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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