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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학년이 올라갔고, 새학년에서도 어김없이 시험은 치뤄야했다.
당시는 아이들이 많아서 한 교실에 50~55명 전후의 아이들이 빼곡이 있었고, 좁은 교실에서 많은 아이들이 있다보니 시험시간에는 책상 배열이 새롭게 되었다. 둘씩 붙어있던 책상은 찢어져서 칠판 앞에서 맨 뒤 환경판까지 일렬로 6~7줄로 나뉘어졌는데, 아이들이 워낙 많아 살짝만 고개를 들어도 옆 아이의 시험지가 훤히 보일정도로 가까웠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OMR카드는 보급되지 않아, 커다란 B5사이즈의 재생재질의 종이에 4지 선다형의 답을 빗금 쳐서 내는 것이 정답지였다.
내 옆줄에 앉은 아이는 우리반 1등이었다. 시험을 치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답이 보였다. 너무도 잘보여서, 아무 생각없이 내 답을 쓱쓱 지우고 1등의 답지에서 본 것과 같은 칸을 칠했다. 그리고 시험시간이 끝나고 다음 시험시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속될수록 나의 죄책감따위는 사라졌고, 나는 그렇게 여러과목을 1등의 답지를 보고 베꼈다.
내가 베낀 시험지의 주인공은 1등이었으므로 나의 점수는 올랐다. 내 점수는 반 7등까지 올라갔다. 내가 답지를 베낀 것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그대로 묻혔다. 나는 성적이 오른 학생이 되었고, 집에서 학교에서 칭찬을 받았다.
그 이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시험을 다시 베끼거나 한 적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때인데도 그 기억이 사라졌다. 내 양심이 기억을 지웠는지, 오래되어서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성장한 고등학교 때의 나는 꽤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 결과 잘 하는 학생이 되었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전문직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잘했었다라고만 기억을 하는데, 어느날 내가 컨닝 한 시험이 떠오른 것이다. 그게 얼마나 나쁘고, 세상 비겁자인지, 당장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고치고 반성하고 사과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도둑질이다, 나쁜 학생이다, 비겁자이다 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내가 뻔뻔한가. 백발이 다 된 지금의 나이에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아있을 뿐이다.
살면서 순간순간이 중요하고 결정적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순간에 의해 절망적이기도 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쁘기도 하지만, 커다란 나의 인생에서 보면 아주 작은 한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희일비하며 하늘이 무너질 듯 기뻤다가, 죽고싶을만큼 절망적이었던 순간들을 지금의 순간에서 돌아보면, 그런일이 있었지라는 작은 조각일 뿐이다. 물론 그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여 전체의 삶을 이루었다. 허나, 하나의 조각이 잠깐 삐끗했다고 해서 쉽게 절망하지는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