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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나의 아이는 누구보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규칙을 준수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단지가 커서, 주민센터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유아들을 위한 강좌가 많이 열렸다. 4~5살 아이들을 모아두고 책을 읽어주는 주1회 수업이 있었는데, 내 아이도 등록했다. 매시간 선생님은 책을 읽어주시고, 아이들은 말똥말똥 동그란 눈을 새까맣게 뜨고 올망졸망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엄마들은 자유였다. 아이들을 수업에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주민센터 앞 놀이터에 둘러 앉아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데, 그 잠깐의 자유시간이 꿀맛같았다.
날씨가 화창하게 좋았던 어느 날, 동화수업은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비누방울관련 동화책을 읽어주고, 비누방울 쇼를 직접 보여주는 행사였다. 귀여운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니, 평소 자유시간을 누리던 엄마들도, 이날 만큼은 모두들 핸드폰으로 각자 아이들을 열심히 찍으며 수업을 지켜봤다.
“자~ 선생님이 곧 비누방울을 만들어볼거에요. 우리 친구들 약속해야해요. 선생님이 ‘움직이세요’하기 전에는 저어어-얼대로 움직이면 안돼요. 만약 움직이는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은 비누방울 놀이를 하지 않고 수업을 그냥 끝낼거에요. 약속할 수 있어요?”
어린 아이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날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생님은 규칙을 설명했고,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네에에에!”라고 크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비누방울을 만들기 위해, 기다란 막대기를 바닥에 깔린 비누액체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 선생님이 ‘움직이세요’ 하기전에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 할까요?”
움직이던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때도 나의 아이는 정말 붙박이처럼 너무도 정직한 차렷자세로 서있었다.
선생님이 다시 비누액체 속에 담궜던 기다란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막대기에 맺혔던 비누액체는 비누방울 모양으로 변해 허공으로 띄워진다.
그 순간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모두들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와~”라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고, 박수를 치는 아이들도 있다. 처음엔 맨 앞줄 아이들만 뛰더니 나중에 뒷줄 아이들도 뛰기 시작한다. 소리도 지른다. 선생님은 ‘움직이세요’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으셨고-모든 아이들이 뛰고 있으니 그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는 여전히 차렷자세로 선생님의 ‘움직이세요’라는 말을 기다리며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다.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을 하고서.
내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움직여도 된다고 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그날 선생님은 끝까지 ‘움직이세요’라고 하지 않았고, 내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비누방울 놀이가 끝나갈 즈음에야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주 조금씩 손을 내밀어보고 움직였다.
아이의 나이는 4살이었다.
‘눈치껏 행동했어야지’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 일은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문득문득 자주 떠오른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한다.
적당히 눈치껏 행동해. 너무 정직하면 네가 손해보는거란다 라고?
그래도 끝까지 규칙을 지키는건 너무 중요해, 그래야 바른 사람이야. 모두들 지키지 않는다고 너도 안지키는건 안돼! 라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정의와 편법에 대해 고민이 될 때가 많다. 내 아이가 손해나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당한 것보다 몇배는 더 속상하다. 그러므로 이득과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을 융통성이라 이름붙이며 가르쳐야하는 것인지 어렵다. 하나의 인격체를 성장시키고 교육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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