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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성적표

by 이야기꾼 제제 2025. 2. 11.

    [ 목차 ]

"관리비가 60만원이 넘게 나왔어"

 

카톡이 울린다.

난방비가 올랐다더니, 작년에 비해 많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관리비 많이 나왔다고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건가?

톡을 받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평생을 일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도 일했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날까지 일을 했다.

나는 학원 강사였다. 회사가 아니기때문에 육아휴직 따윈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그냥 무직무급으로 땡이다.

아이를 낳고 한달이 되었을 무렵, 과외가 들어왔다.

남편은 내가 일을 하러 가기를 바랬다. 신생아인 아이는 자기가 볼테니 일을 하러가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일을 놓은적이 없다. 2년전까지는..

남편이 멀리 회사배정을 받았기에 우리는 지방에서 아무 연고지도 없는 서울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친척도, 친구도 그 어떤 지인도 없었다.

나는 낮에는 아이를 보고, 밤에는 과외를 하거나 학원일을 했다.

남편은 과외를 시작할때는 저녁에 아이들을 보겠다더니, 막상 과외날이 되면 술약속, 회식약속으로번번히 오지 않았다.

4살 1살 아이들을 두고 과외를 나가기 쉽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낮에 일하고 밤에 아이들을 보는일을 하기를 원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 학교를 다니면서는 공부방을 했다.

 

우리는 한달에 한번은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싸웠다.

이유는 돈이었다. 카드값 결제일이 되면 어김없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느 부부처럼 싸우고 화해하며 시간은 흘렀다.

우연히 나는 동네 학원이 매물로 나온것을 알게 되었고, 학원을 인수해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5년을 미친듯이 일했고, 물건을 살때 얼마인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벌었다.

 

그리고 몸이 아팠다. 과거 큰 병을 앓았던 적이 있던 나는 무서웠다.

이대로 내가 죽어버리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학원을 그만두고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들이 일어났고, 나는 아직도 쉬는 중이다.

정확히 말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너무 많아 더는 학원에 취직이 되지 않고,

평생을 학원일만 해온 내가 다른 일자리를 구할수도 없다.

 

남편은 내게 지금껏 결혼해서 사는 동안 단 한번도 생활비를 준 적이 없다.

카드를 쓰라고 했다.

카드를 쓰고, 월급을 받으면 카드값으로 빠져나가니 줄 돈이 없겠지라고 이해도 갔지만

현금이 하나도 없이 생활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했다.

자연스레 우리는 각자 번돈은 각자 관리하게 되었다.

 

내가 지난2년간 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남편은 또다시 슬슬 한계가 온것같다.

 

아무런 말도 없이 카톡으로 관리비 영수증 사진만 보내왔다.

내가 답이 없자, 

한줄의 글이 온 것이다.

"관리비가 60만원이 넘게 나왔어"

 

어쩌라고.

내가 썼어?

다같이 쓴 관리비를 왜 나에게 말하는건지.

난방 온도를 올리는게 못마땅한가.

 

그날 나는 난방 온도를 다 낮춰버렸다. 

하필 그날부터 한파가 몰아쳤고, 아이들이 춥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관리비를 한달 내가 살아낸 성적표 취급을 하는 남편이 싫었다.

자기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며 알게 모르게 눈치주는 남편이 싫다.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나에게 돈을 한푼도 주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나는 돈이 없다.

남편이 준 카드로 이것저것 사면, 부부싸움할때 말이 나온다. 뭘그리 사냐고.

애들반찬이지 않냐고 하니, 너는 그 반찬 안먹냐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기분 좋을 때면, 내가 그 때 그 말 서운했다고 하면 

화가 나서 그냥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남편이 싫다.

내가 한달을 살아낸 성적표가 관리비 청구서라면,

내 남편은 내가 지난 20년간 살아낸 내 삶의 성적표 같다.

 

남편도 나를 싫어한다.

서로 싫은데도 우리는 그냥 산다.

이혼하려고 진지하게 준비해보았더니, 재산을 절반으로 나눠야하고, 아이들도 걸리고, 결국 그냥 사는 것이 그래도 낫겟다는 결론인데. 이 결론은 나도 남편도 무언의 동의다.

 

글을 쓰다 보니 난데없이 하소연글이 되어버려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때, 가능하면 밝게 쓰려고 애쓴다.

내 이야기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빌어 내가 바라는 이야기, 내가 그리는 그림을 쓴다.

 

나는 글쓰는게 참 좋은데, 

쓰다보면 신세한탄으로 끝나는 현실이.

그런 내가 참 안.쓰. 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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