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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오늘도 맑음
"아이고, 허리야..."
서미경은 허리를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아파트 놀이터 한켠에 있는 꽃밭의 잡초를 뽑은 지 두 시간. 무릎과 허리가 뻐근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꽃밭을 보니 마음만은 흐뭇했다.
"미경 씨, 또 이러고 계세요? 제가 관리실에 얘기할게요. 이런 건 관리실에서 해야죠."
옆 동에 사는 김 여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렇게라도 운동해야죠."
미경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6개월 전, 20년 넘게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보증을 섰던 동생의 사업 실패로 떠안게 된 빚까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미경은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꽃밭을 가꾸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몸이 힘들어야 현실의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릴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꽃을 만지다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머, 이 예쁜 꽃은 뭐예요?"
"제가 키우는 거예요. 금잔화라고 하죠."
"우와, 너무 예쁘네요. 저희 집 앞 화단도 좀 봐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시작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베란다 정원 관리를 맡게 되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근처 카페의 실내 화단 관리도 의뢰받았다.
"미경 씨, 우리 꽃집 같이 하실래요? 제가 자금은 댈 테니까, 미경 씨가 꽃이랑 화분 관리해주세요."
단골이 된 카페 사장님의 제안에 미경은 깜짝 놀랐다.
"저야 좋지만... 제가 전문가도 아닌데..."
"무슨 소리예요. 미경 씨가 가꾼 화분들, 손님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48살의 나이에 새로운 시작이라니. 처음엔 두려웠다. 하지만 꽃을 만지며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빚은 아직 남아있지만, 조금씩 갚아나가는 중이다.
오늘도 미경은 일찍 일어나 화분들에게 물을 준다.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이 새싹처럼... 늦었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구나.'
창가에 놓인 금잔화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미경의 얼굴에도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도 날씨는 맑음. 그녀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