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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그런날이 있다.
머피의 법칙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
아침 도시락을 싸던 엄마가 밥을 퍼려고 밥통을 열고 그릇을 손에 들다가 쨍그랑.
그릇이 방바닥으로 나뒹굴며 산산조각이 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아침이라기에는 훨씬 더 이른 새벽.
나는 아침을 먹지도 않고 학교를 다녔는데. 도시락을 싸던 엄마는 왜 밥그릇에 밥을 뜨려고 했을까.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지금도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여튼 엄마는 밥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릇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자
엄마는 작게 "아이 씨"를 내뱉었다.
엄마는 그날 내게 학교에 걸어가라고 했다.
학교가 멀어서 아침마다 엄마가 차로 태워줬는데, 그릇을 깬 그날 하루가 불길한 일의 시작이라고 여겼나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별 것 아닌 이야기이지만,
그날 깨진 그릇은, 나도 엄마도 마음이 철렁한 사건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불이 나서, 운영하던 세탁소가 다 타버리고,
그야말로 쫄딱 망해 이사를 앞두고 있는 침울한 분위기였는데
아침에 냅다 떨어진 밥그릇에 엄마도 나도 마음이 철렁... 할 수 밖에.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내 머리에, 마음에 남았는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안좋은 일의 징조가 시작되려하면 그날의 사건이 떠오르고는 한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났다며 어제 늦게까지 놀다 온 딸은
오늘 아침 일어나기가 힘겨운 까닭인지.
아니면 그냥 다른 이유로 기분이 안좋은 건지
아침내내 짜증이 나 있었다.
나에게 툭툭 거리고, 행동을 탕탕 하고, 짜증을 내며
인상쓰는 얼굴로 학교를 갔다.
여행 예약을 위해 호텔측과 통화를 하다가,
상담원도 아닌 잘 모르는 사람이 전화벨이 울린다는 이유로 땡겨받은 직원은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도 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메뉴얼만 읽어대며 나를 슬슬 짜증이 나게 만들었다.
긴 통화 끝에 제대로 된 상담원과 다시 연결시켜주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그 길고도 긴 짜증이 나는 통화를 힘겹게 끊고 나니 택배가 왔다.
해외 배송으로 시킨 옷과,
며칠 전 눈여겨 봐둔 다이어리가 도착했는데
옷은 작고, 다이어리는 실망스러웠다.
상세사이즈를 보고 신중하게 주문한 옷은 말도 안되는 사이즈의 옷이 왔고,
반품을 요청했으나 한국인 상담자와 연결이 더뎌, 영어로 채팅창에 자꾸 뜨는 질문들..
힘겹게 반품 신청을 하고, -사실 반품신청이 제대로 된 것인지도 모르겠는-
다이어리를 뜯었는데
화면과는 너무도 다른 칙칙한 블루색상에 내부는 그냥 교무일지 수준의 촌스러운 폰트들.
아니.. 사진과 이렇게 다를수가 있나.
더군다나 다이어리는 반품하려면 왕복택배비만 6천원이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되지 않는 느낌이 들며
쨍그랑 하고 떨어지던 밥그릇이 훅 떠올랐다.
엄마 말처럼 오늘 하루 조신하게 있어야하나.
요즘 젊은 아이들은 부정적인 일이 있을때도 럭키비키를 외친단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연예인이 "럭키비키잖아"라고 자신의 이름을 뒤에 붙여 만든 단어가 퍼지며,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오히려 긍정으로 역발상하며 붙이는 단어이다.
요즘 아이들의 깜찍발랄한 단어와 생각을 들으며 아이들은 말도 생각도 '참 예쁘다'라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늙어버려서인가, 긍정연습을 안해봐서인가. 럭키비키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습관처럼 '하루종일 되는 일이 없군'으로 사고를 시작해버린다. 이제 오전이 지나갔을 뿐인데 무슨 하루종일이란 말인가. 이렇게 습관이 무섭다. 내 사고도 습관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여버린다.
이성을 붙잡고 있는, 기분이 좋은 때, 에너지가 넘칠 때는 각종 젊은이들의 사고도 따라하고, 좋은 격언들, 글귀들을 떠올리며 애써보고 노력도 하는데,
이렇게 맥이 탁 하고 풀려버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한없이 처지며 아무런 노력도 하고 싶지 않고 화만 난다.
그래도 외쳐보자.
럭키비키를!!!
아직 하루가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오후에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날게 없을지도.
아주 작은 좋은 일만 일어나도 더 기분좋게 더 크게 와닿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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