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63 시험 국민학교때는 공부를 잘하던 나는 중학교가 되니 공부가 어려웠다. 열심히 하기가 싫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제대로 들은적도 없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생계로 바쁘신 부모님은 내 공부에 하나하나 신경을 써주실 여유가 없었고, 나는 사춘기시절을 친구들과 편지를. 라디오에 사연을. 만화책으로 로멘스를 배우며 자라고 있었다. 당시에는 시험을 치면 성적표에 등수까지 정확히 찍혀 나왔고 부모님의 도장을 받아가야했다. 내 첫 시험은 27등이었다. 당시 우리반 학생이 52명-53명 사이었으니 딱 절반이었다. 국민학교때 잘한다 소리듣고, 상도 받고, 칭찬만 받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숫자였지만, 그 숫자가 충격적이지 사실은 예정된 결과였다. 공부란걸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학교 수업시간에도 공부하지 않았으니 말이.. 2024. 5. 25. 아이를 키운다는 것 나의 아이는 누구보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규칙을 준수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단지가 커서, 주민센터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유아들을 위한 강좌가 많이 열렸다. 4~5살 아이들을 모아두고 책을 읽어주는 주1회 수업이 있었는데, 내 아이도 등록했다. 매시간 선생님은 책을 읽어주시고, 아이들은 말똥말똥 동그란 눈을 새까맣게 뜨고 올망졸망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엄마들은 자유였다. 아이들을 수업에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주민센터 앞 놀이터에 둘러 앉아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데, 그 잠깐의 자유시간이 꿀맛같았다. 날씨가 화창하게 좋았던 어느 날, 동화수업은 야외에서 이루어.. 2024. 5. 23. 요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법이다. 며칠째 이가 시리다. 차가운 것을 먹을때는 물론이고, 뜨거운 것을 먹어도 이가 시리다. 결국 치과를 가야했다. "잇몸치료를 하셔야겠어요. 한번에는 힘들어서 안되고 구역을 나눠서 몇주간에 걸쳐서 진행될 겁니다" 잇몸치료라는 단어만 들었는데도 등골이 오싹하다. 마취를 하고 진행된다하니 더 무섭다. 얼마나 아프면 마취를 해야하는지. 진료가 시작되었다. 의사가 마취주사를 놓기 시작하자,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준다. 신기하게도 손을 잡아주니 안정이 된다. 내 손을 잡고 토닥토닥 거리며 나를 위로해주는 간호사 덕에 마취주사 맞는 동안 잔뜩 긴장되어 치솟은 어깨가 아래로 스르르 내려가는 느낌이 난다. 곧이어 길쭉한 쇠고챙이 같은 것을 잇몸 사이로 쑥쑥 집어 넣어 얼.. 2024. 5. 22.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언제나 시작은 창대하다. 계획도 멋들어지게 세우고, 에너지도 넘친다. 훨훨 넘치는 에너지를 초반에 다 쏟아붓고, 중간 즈음 진행되고 나면 에너지 고갈로 흐지부지해진다. 엄마는 늘 말했다. “니는 뭐든 끝이 없노. 매애앤날 벌리기만 한가드기 벌리놓고!”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여전하다. 시작은 창대한데, 끝이 없다. 매년 다이어리는 새로 사고, 두어 달만 작성한 채 새 다이어리는 버려진다. 그리고 다음해 또 산다. 일주일 중 어느 시간을 가장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단연코 월요일이다. 그래도 나는 “시작”이 좋다. 월요일이면 무엇인가 시작하고 활기차다. 그런데 나의 에너지는 수요일쯤 사라지고, 우중충하고 우울한 주의 끝을 보낸다. 이제 좀 나눠쓰고 분배해서 쓰는 법도 알 때가 되었구만! .. 2024. 5. 21. 비오는 날은 카스테라! "비오는 날엔 카스테라를 먹어야해" "응?? 웬 카스테라.. 파전이 아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온 집안 가득 카스테라 향이 퍼졌다. 아이는 그 향이 너무 좋았다. 어린 아이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아빠가 집에 있었다. 회사를 나가지 않았는지 일찍 귀가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비가 오면 일을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아빠는 하얗지만 오래되어 누런, 늘어진 런닝을 입고 힘차게 거품기를 젓고 있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카스테라 굽는 기계는 전선 끝이 일자로 뻗은 110V제품이었고 나중에 알게 된 "도란스"라고 아빠가 부르던 기계를 꽂아 사용하였다. 그 시절 비쌌을 일본에서 온 듯한 카스테라 기계가 어떻게 가난했던 아이의 집에 있었는지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모를일이지만,.. 2024. 5. 15. 단골 #자주가는까페는? 어딜가나 단골손님이 잘 되는 사람이 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가게 주인과 친하고, 갈때마다 주인이 알아보고, 인사하고 살갑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극 소심형인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면서 부럽기도 하다. 아무리 자주 가도, 주인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아는체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또 주인이 아는체 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그 가게를 가지 않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 나를 알게 되고, 반갑게 인사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상대가 인사를 하면 반갑게 같이 인사해야하고, 무엇인가를 내게 물어오면 어디까지 대답해야하는지, 나도 물어봐줘야하는지 따위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마음이 복잡해지고, 결국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렇다고 내가 사.. 2024. 5. 14.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