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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복숭아 통조림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어릴적 기억이 몇살때부터 남아있을까.
엄마뱃속에서부터 기억난다는 우스개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드문드문 장면으로 기억난다는 사람도 있다.
서사관계가 연결되어 기억에 남지는 않더라도,
사진처럼 특정 장면이 기억에 남고, 그 앞뒤의 스토리는 당시에 느꼈던 '느낌'으로 끼워맞춰 추억하기도 한다.
사진첩에 꽂힌 혜정의 얼굴은
통통한 볼따구에 4살 정도로 보인다.
커다란 입을 벌리며, 캔 속 복숭아 조림을 입에 넣고 있다.
함께 사진 속 혜정을 내려다보던 엄마는 말한다.
"어찌나 우악스럽던지. 니는 그걸 먹겠다고 울고불고. 아이고. 말도 마라. 느그 아빠는 그 큰 손으로 니 뺩을 후려치는데.. 그래놓고 사주기는 머하러 사주노. '삼춘은 사줄꺼면 때리지말고 그냥 사주지라'고 철이가 말하드라니까.. 그리 맞고도 좋다고 먹고 안있나. 이놈으가시나는. 내같으믄 드러버서 안묵겠드만"
엄마의 말과 묶여 사진속 아이의 얼굴은 앞뒤 스토리를 가졌다.
사실 혜정은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이 엄마의 말에 의해 짜맞춰진 기억인지, 진짜 그날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감정은 또렷이 떠올랐다.
혜정은 때때로 아빠가 무서웠다.
다정하다고, 니네한테는 잘한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혜정에게 아빠는 가슴이 콩닥거리게 하는 긴장해야하는 존재일때가 있었다.
그날은 큰 집 식구, 큰엄마, 큰아빠, 큰집오빠, 큰집언니와 우리 가족이 다같이 부산의 어느 공원에 놀러를 간 날이었다. 엄마는 혜정의 동생을 임신하여 배가 볼록했고, 아빠는 젊디 젋고 잘생긴 키가 큰 사람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늘 뜨개질을 하셨는데, 그날 혜정이는 파란색 실로 예쁘게 뜬 엄마표 조끼 스웨터를 입었다. 당시 유행하던 골덴 바지와 목티를 입고, 그 위 스퉤터 조끼를 입은 혜정은 양 볼이 빵빵하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귀여운 4살 여자아이였다.
공원에서 나무도 타고, 신나게 놀다가 노점에서 쭉 늘어놓은 음식들을 보고 혜정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복숭아 통조림을 처음 보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캔 바깥에 그려진 핑크빛 말캉해보이는 복숭아 그림에 마음을 홀딱 뺏겨버린것이다. 사달라고 졸랐지만, 1982년이었으니 그렇게 비싼 과일통조림을 사주기에 아빠는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큰집 아이들도 있으니 입이 여럿이라 통조림 하나로는 어림도 없을텐데 라는 걱정도 한몫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너하고싶은거 다해'라며 맛있는거, 예쁜 인형 다 사주는 요즘과는 다른 시대였다. 아빠는 혜정을 달랬다. 하지만 고집 쎈 혜정은 더 크게 울며불며 떼를 썻고 고래고래 목소리는 커졌다. 아이를 달랠때 어떻게 해야한다와 같은 교육에 대해 요즘같은 정보가 없던 초보 아빠는 채찍을 선택했다.
'찰싹'
말을 안들어 머리를 때렸는데,
아빠의 손은 너무 컸고, 혜정의 얼굴은 너무 작았다.
커다란 손바닥은 찰싹 소리를 내며 혜정의 옆얼굴을 가격했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혜정은 더 울며 나뒹구러졌다.
제일 당황한 것은 아빠였지만, 남자의 체면에 그리고, 실상 자신이 크면서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이유로, 어떻게 사과해야할지, 어떻게 미안함을 표시해야할지조차 몰라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혜정이는 복숭아 통조림을 얻었다.
아빠의 사과방식이었다.
혜정이 덕에 큰집 언니, 큰집 오빠도 복숭아 통조림을 얻어, 다같이 입에 넣고 있고,
'내 덕이지? 맛있지?'라는 표정으로 철없이 웃으며 입에 복숭아를 넣고 있는 혜정이의 모습을 누까 찍었을까.
그렇게 사진첩에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을 내려다보며,
아빠 성격이 보통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엄마의 푸념을 들으며, 그때의 아빠보다 나이가 더 먹은 지금의혜 혜정은 아빠에 대한 애증을 느낀다.
사실 혜정에게 그날의 기억은 하나 더 있다.
그 공원에서 카트라이더 같은 차를 타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지금의 범퍼카 비슷한 차였는데 레일 안을 차를 운전하며 타는 놀이구였다.
그게 타고 싶었던 혜정은 그 차를 타겠다고 했는데, 아빠는 '너는 어리고, 운전도 못하니 절대 안된다'라고 했다. 그래도 타고 싶어서 계속 징징거렸다. 결국 복숭아 사건도 있었던 아빠는 마지못해 차를 태워주기로 하고, 아빠와 혜정은 함께 차를 탔다. 당연히 4살인 혜정이는 운전을 못하니, 아빠가 운전을 하고, 혜정은 옆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때 아빠가 운전 하는 내내 웃었다는것은 혜정이 기억속에만 있다.
'어~~ 이거 어렵네. 부딪치네 하하하하하' 하며 웃음섞인 혼잣말을 하며 한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한손으로는 혜정의 허리춤을 안은채 차를 이리저리 벽에 콩콩 박아가며 코스를 타며 내려오던 기억이 난다. 혜정은 그 때 뿌듯한 기분이 느껴졌었다. 그 뿌듯함은 '우리아빠 운전잘하지? 멋지지?'라는 뽐냄이었는데, 지금의 혜정에게는 아빠를 웃게했다는 뿌듯함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자라는 동안 가난함을 크게 느끼지 못할정도로 혜정은 많은 추억을 가진 아이이다. 꼭 물질이 풍요하고 많은 것들을 가져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겪을 때의 기억은 사라져도, 그때의 감정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 감정에 끼워맞춰 기억들은 추억이 되기도하고, 악몽이 되기도 한다.
결국 좋은 '느낌'을 느끼며 모든일을 보내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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