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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쉬어가는 중입니다

by 이야기꾼 제제 2025. 1. 30.

    [ 목차 ]

 

어릴 때 나는 늘 무언가를 해야 했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동생들을 돌보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어른이 되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책임감이란 이름으로.


“첫째니까.”


그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당연해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잠시 쉬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면서.
아직은 막막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를 찾아가고 있다.

 

1장. 장녀의 자리

우리 집은 늘 바빴다.
부모님은 장사를 했고,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어린 나는 밥을 짓고,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힘든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울기보다 동생들을 혼냈다. 화를 내고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 내 속상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줄 알았다.

동생들은 나를 무서워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누나보다는 무서운 또 하나의 어른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부모님에게도 늘 조심해야 했다.
특히 아빠가 화를 내면 숨을 죽였다.
손이 날아올까 봐, 큰소리가 들릴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실수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 혼나지 않을 테니까.

 

2장. 멈춰버린 열정

어린 시절 나는 공부를 잘했다.
성적이 좋았고, 엄마 아빠도 그런 나를 대견해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책을 붙잡아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공부가 싫어졌다.

그런 나를 엄마는 실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 아팠다.

 

나는 점점 친구들과 노는 데에 빠졌다.
책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이 좋아졌다.
밤이면 조용히 편지를 쓰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글쓰기는 취미였고, 현실은 냉정했다.

나는 결국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3장. 어른이 된다는 것

고등학교를 대충 졸업하고, 대학에 갔다.
그리고 졸업 전,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제 뭐라도 해야지.”

나는 취업의 압박을 느꼈고, 결국 학원 강사가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점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학생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내 자리도 점점 단단해졌다.

 

강사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나는 결혼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결혼 후 10년이 흐른 뒤, 나는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되었다.
처음엔 작은 학원이었지만, 점점 학생 수가 늘어갔다.
처음에는 20명이었던 학생이 130명까지 늘었다.
내 힘으로 학원을 키워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4장. 뜻하지 않은 위기

그런데 몸이 점점 버거워졌다.
과거에 암을 앓았던 적이 있었기에 혹시 재발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컸다.
결국 건강을 위해 학원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학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이 걸렸고,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법정에서 싸워야 했고, 5천만 원을 물어주게 되었다.

한순간에 빚을 지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싶었는데, 이제는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5장. 다시, 길을 찾다

지금 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빚을 갚아야 하는 현실과,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


나는 내가 다시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 고민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오래전, 사춘기 시절 밤마다 글을 쓰던 나를 떠올린다.
그때처럼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여러 곳에 글을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내가 글을 못 쓰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시 도전하고 싶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이야기가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중이다.
너무 오래 달려왔으니까.
조금은 천천히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