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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딸아이는 이제 머리가 컸다고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악을 쓰며 대들고, 어떤 날은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하고, 어떤 날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춰내며 상처를 쏟아낸다.
화가 나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 순간은 진심이었을 말들을 나에게 뱉어내고, 나는 그 비수에 오랜 시간을 울었다.
결국 내가 엄마이기에 또 참고, 또 숙이고, 또 접근하고, 그래도 아이의 화는 잦아들지 않았다.
그런 내게 우연히 눈에 띈 노란표지의 책.
" 나는 엄마가 힘들다 "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엄마와 딸의 특수관계에 대해 여러종류의 책을 이미 발간한 저자 사이토 다마키씨가 비슷한 류의 책을 쓴 작가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 형태로 전개된다.
책을 쓴 작가들은 자신들의 여러 지식과 관점으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그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워 문장이 매끄럽지 않게 여겨지는 대목도 많았다.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와 전문가의 입장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도 많아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지배는 몇가지 형태를 띱니다. 그중에서 억압, 헌신, 동일화'가 세가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노골적인 지배인 '억압'은 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금지만이 아니라 다양한 말이 포합됩니다. 하기오 모토씨의 <이구아나의 딸>을 보면 어릴 때 부터 쭉 엄마에게 이구아나라 불린 딸은 자신을 이구아나로밖에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때 딸의 몸을 만드는 것은 엄마의 말입니다. 그 말이 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침에도 엄마는 '너를 위해', '네가 잘될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라고 주장합니다......(후략) p13
사이토를 만나 대담을 나누는 각 작가들은 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들어 모녀관계를 설명한다.
그중 첫번째 등장하는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의 저자 다부사 에이코의 이야기가 가장 공감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이 편만 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에이코는 죄책감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늘 에이코의 인생을 결정했다. 다녀야 할 학원도 엄마가 정하고, 어느 날 엄마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옮기고, 방의 가구는 물론 헤어스타일, 패션도 엄마 마음대로, 엄마가 미용실을 예약해놓고 가지 않으면 화를 냈다. 그게 '이상해서' 반발을 하면, 엄마는 자신이 해주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수긍하게 했다. 어떤 날은 내 방에 쳐들어와 인격을 무시하거나, 미래를 부정하는 말을 해대고, 그에 대해 참을 수 없어 심하게 반발을 하면,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엄마는 에이코를 사랑해, 에이코도 엄마 아빠가 소중하지?"라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에이코가 태어나던 순간의 일을 감동적으로 말하고, 엄마의 기분이 풀리면 "이제 화해하는거다?" 라고 말하며 대단원을 맞았다. 이런일은 거의 매일 한 두시간씩 반복되었고 에이코는 스트레스로 자주 아팠다.
엄마는 늘 "우리가 이혼을 했니,빚이 있니, 도박을 했니, 우리 집 정도면 정말 행복한 거 아니니"라고 웃으며 말했고, 에이코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29살 에이코는 엄마의 개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반성으로 매일매일을 지내느라 지쳐버린 자신을 깨닫고 거리두기를 위해 부모에게 주소를 알리지 않고 이사해버렸다.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거리두기를 해도 죄책감때문에 힘이 든다.
엄마가 하라는 것을 하지 않고 반항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엄마 말을 듣지 않았음, 즉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는 죄책감때문에 마음이 힘들다.
거리두기가 답임을 알지만 죄책감이 발목을 잡는다.
에이코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딸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어서 엄마인 입장도 궁금했다. 엄마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엄마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들어가며 설명하는 부분들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딸보다 엄마의 입장이라서 그런지 부족함이 느껴졌다.
책에서 주장한 요인들 중 엄마는 딸과의 관계를 신체의 동일시를 설명한다.
딸의 여성성에 대해 자신의 몸과 동일시 생각하는 엄마는 딸의 출산이나 초경이 달갑지 않을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성성에 대한 엄마가 가진 무의식적인 혐오감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론적인 접근의 문장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일본과의 문화차이도 있고, 2017년에 쓰여진 시기적 차이도 책 곳곳에서 많이 느껴쪄 읽는 중간 턱턱 막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문장들이 가슴에 와 꽃혔다.
* 엄마와 멀어지고 싶은 딸.
-딸도 어른이 되면 매일 일어나는 일을 엄마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는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엄마의 저주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하지만 갑자기 그만두면 엄마가 당황하겠지요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죠
-서로를 불쌍해하고 관계를 질질 끌면서 상호의존적이 되는것이 문제군요.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게 엄마와 멀어지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네요. p43
엄마로부터 최대한 벗어나야겠죠. 뭘해도 딸이 보기에 엄마는 불쌍해요. 어떻게 해도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가능한 한 그 대상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소용없어요. 그만큼 복잡하고 까다롭죠. 무덤에 들어가도 엄마의 존재는 살아 있으니 p199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 "정말 사랑했는데"하고 통곡하거나 "이렇게 증오하는데 쉽게 용서가 될것 같아?"하고 원망하는 등 감정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여전히 좋은 면도 있고 싫은 면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엄마는 극히 일부이고, 사실은 정체모를 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은 엄마가 살아있을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고 있어요. p108
결국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나와는 별개의 사람이다. 나와 다른 것에 웃고, 나와 다른 것에 슬퍼함에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서운해하는 순간 딸과 나의 관계는 어그러진다. 딸은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에 찬 딸의 절규에 나는 더 아프다.
* 엄마의 눈물이 싫은 딸. 엄마의 눈물은 죄책감만을 키울 뿐이다
여자가 우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울어봤자 누구도 감탄하지 않아요, 게다가 여자가 울 때는 왠지 모르게 무섭잖아요. 엄마 말은 다 들어야 할 것 같고. p139
"엄마의 눈물이 응어리진다" ..중략.. 둘의 관계는 누구 하나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넣었습니다. p152
"엄마의 눈물이 응어리진다." 이 얼마나 무거운 문장인가.
며칠전 딸아이는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그렇게 내 앞에서 울지마, 남들이 보면 내가 엄청 잘못하는것 같잖아' 그 말을 들으며 더 서러워 눈물이 폭발했는데, 딸의 죄책감이었다. 나의 눈물을 보며 딸은 화를 내고 있지만 죄책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동시에 부담스럽고, 마음이 답답해졌으리라. 죽어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에...
*엄마의 고립감
-쉰을 넘긴 이후로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모도 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아이도 부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p153
전통사회에서 며느리는 노동력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는 할 일없는 노인들이나 나이많은 형제의 일이었다. 현대사회가 되며 많은 쏟아지는 육아정보들은 엄마에게 아이를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모유수유가 더 좋고 천기저귀가 더좋으며 아이와 눈을 많이 마주쳐야하고 공감해줘야한다.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상승으로 일도 해야한다. 엄마가 해야할 일은 너무도 벅차다. 벅찬 속에서 해낸 육아는 아이에 대한 보상심리를 발동시킨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특히 같은 여성인 딸은 나의 이런 삶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나와 같은 성으로 같은 편으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엄마는 그렇게 모순적인 이중적 사고로 스스로 외롭고 고립되어 간다.
딸들은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와 '알고는 있지만' 사이에서 고뇌한다고,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 '아무리 그래도'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정서적인 유대가 너무 강해 '알고는 있지만'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결국 거리두기이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는 말들은 하나의 점 "거리두기"를 향한다.
엄마와 딸.
그둘은 서로를 불쌍해하는 관계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로 관계성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존중이란, 서로를 인정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남처럼 대하고, 터치안하고, 관여안하는것.
단순히 욕심을 내려놓는 것을 안된다. 마음 내려놓기로 안된다.
그냥 손님처럼 대해야한다.
내게 머물다 가는 손님.
오면 반갑고, 오지 않으면 서운하지만, 막상 왔을때 다시 오지 않을까봐 서운하다 표현못하는 손님.
이 윗 줄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씁쓸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 문장을 씁씁하지 않게 읽어내야한다.
딸아이가 힘드니 내가 너를 놓아주겠다. 내가 반성하고 각성하겠다가 아니다.
나 스스로를 위한 홀로서기가 시작되어야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힘들다] 이 책은,
어렵고, 공감안되고, 슬펐지만
나를 또 한뼘 나아가게 했다.
상처받은 엄마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등생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이토록 고생해서 내 인생을 너에게 바쳤으니
너는 나를 버리지마라'라고 아이에게 암묵적인 압박을 주게 되는데 그래도 무리가 아닌겁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 육아 기조는 아주 최근에 형성된 거에요. '전통적 육아법'이 결코 아닙니다.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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