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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넘어오지마"
영주의 짝은 책상에 줄을 쫙 그었다.
초록색 책상에 줄이 갔다.
영주는 아무말을 하지 못했다.
영주의 짝은 영주를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영주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냥 이유없이 나를 미워한다.
책상에 줄을 그어두고는 영주의 책이나 학용품이 넘어가면 때렸다.
"어 지우개 넘어왔어"
라며 주먹으로 영주의 어깨를 내리쳤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지만 영주는 참았다.
영주는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학교가는 길은 지옥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선생님께 이야기하면, 분명 선생님은 영주와 짝을 동시에 불러 이야기하실테고,
그 이후 짝의 괴롭힘이 더 심해질까봐 무서웠다.
영주의 짝은 곧 친구들 무리까지 끌어들여와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영주는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나의 딸은 지금 고2다.
공부를 잘했고, 특목고를 갔다.
특목고 특성상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적응을 못했다.
매일 집에 오고 싶다고 메시지가 오고,
주말에 집에 오면 엄마인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덤벼들었다.
뒤늦은 사춘기가 시작된건지 속상하고 화가났다.
나와 딸은 매일을 싸웠다.
주말이 다가오는게 무서웠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알게 되었다.
나의 딸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아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반 아이들이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에게 잔인한 질문은 "왜?"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애들이 왜그러냐고 물었다.
마치 이유가 있으면 따돌려도 된다는 논리처럼.
이유는 없다.
그리고 당하는 아이는 이유를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유가 어디있을까.
싫은 아이는 오른손잡이이면 오른손잡이라 싫고, 왼손잡이면 왼손잡이라 싫을뿐이다.
이유따위는 따돌리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정당한 구실이 될 뿐이다.
이유따위가 어디 있어서, 엄마란 사람이 딸아이에게 고작 하는 질문이 "왜 애들이 너한테 그래?"라니..
마음같아서는 쫒아가서 니네들 우리딸한테 그렇게 하지말라고 싸워주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달래주고도 싶지만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인줄은 나도, 딸아이도 안다.
몇번을 학교에 담임선생을 찾아가 상담도 하고, 고민이야기도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결론은 "딸아이가 마음을 굳건히 먹고 이겨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것뿐.
사람은 더불어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가야하기때문에 그 안에서 상처를 수없이 겪는다.
엄마 영주는 어린 영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딸아이에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해주려고 하고,
너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사지로 아이를 매일 아침 밀어넣으며, 견디게 해야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
나의 삶으로 넘어오지 않게,
상대가 선을 넘어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언제쯤 알게 되는걸까.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
나는 지금 괜찮은가.
어쩌면 어른이 되면서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주는 관계를 다 끊어버림으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간 아이가 메시지가 온다.
"숨이 막혀"
"힘들면 집에 와"
"그럴까?"
대놓고 괴롭히거나 욕을 하면 학폭으로 신고라도 하지,
이건 교묘히 아이 하나를 반전체가 아무도 말걸지 않는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
"공부가 뭐가 대수야. 너가 제일 중요하지. 학교 그만둬도 돼. 힘들면 너 휴학하자"
"일단 알겠어"
선긋기는 누가해야하나,
가해자가 해야하나,
피해자가 해야하나.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